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멈추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 작성자 사진: KangCar kangcar80@gmail.com
    KangCar kangcar80@gmail.com
  • 2월 10일
  • 2분 분량
수많은 자동차들
수많은 사람들 Of them 65x140cm mixed media 2009

나는 늘 미래에 대한 불안을 안고 살아왔다. 돌이켜보면 그 불안은 단순한 성격이나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멈추지 못하는 것들에 대하여 스스로에게 설명하지 못한 채 살아온 시간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그림을 그렸고, 잘 그린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자연스럽게 그림을 선택했지만, 한국의 입시는 생각보다 거칠었고 그 과정에서 나는 빠르게 지쳐갔다. 결국 원하는 시기에 미대에 가지 못했고, 그 경험은 실패라기보다 내가 서 있던 자리 전체가 흔들리는 감각에 가까웠다.


그 무렵 한 스승을 만났다. 입시를 위한 그림과 기술은 이미 충분히 익힌 상태였고, 그는 나에게 또 다른 선택의 길이 가능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이야기해준 사람이었다. 학교에 다시 들어가는 것, 편입이라는 방식 역시 그때 처음 현실적인 선택지로 다가왔다. 그렇게 나는 누구나 밟는 한 가지 길이 아니라, 여러 굴곡을 거쳐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그 시간들은 빠르지도, 매끄럽지도 않았지만 분명 나를 통과해왔다. 그래서인지 그림을 배운다는 것, 특히 ‘기술’이라는 단어에 대해 나는 늘 복잡한 감정을 가지고 있었다.

미술을 배운다는 것은 결국 기술을 익히는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 기술을 온전히 신뢰하지도, 완전히 거부하지도 못했다. 배웠기 때문에 써야 했고, 쓰다 보니 벗어나고 싶어졌지만 이미 몸에 밴 것들을 지워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기술은 나를 지탱해주기도 했고 동시에 나를 구속하기도 했다. 그 모순 속에서 나는 계속 흔들렸다.


그렇게 불안정한 20대와 30대를 보냈다. 학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들어갔지만, 나는 여전히 나 자신에 대해 명확하게 말할 수 없었다. 무엇을 그리고 싶은지보다 ‘나는 어떤 사람인가’라는 질문이 더 앞에 와 있었다. 집에서는 또 다른 기준의 세계가 있었다. 형제들은 모두 공대생이었고, 정확한 데이터와 명확한 결과, 확실한 답을 중요하게 여겼다. 두둥실한 형용사나 애매한 감정의 언어는 쉽게 신뢰받지 못했다.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며 나 역시 설명되지 않는 감각보다는 증명 가능한 무언가를 요구받으며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어느 날 운전을 하다 신호에 걸려 멈춰 섰다. 넓은 8차선 도로 위에 수많은 자동차들이 줄지어 서 있었고, 모두 정해진 시간과 목적지를 향해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그 자동차들은 지금 내가 그리는 것처럼 화려하지도, 상징적이지도 않았다. 그저 이동 중인, 달리고 있는 자동차들이었다. 그 순간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저 무리 속에 나도 하나로 섞여 있구나. 나 역시 어딘가로 가고 있지만 과연 방향은 맞는 걸까, 속도는 누구를 기준으로 정해진 걸까. 그 질문이 자동차 그림의 시작이었다.

터널로 향하는 자동차들
Black hole 116x87 mixed media 2009

자동차는 이후 나에게 단순한 대상이 아니었다. 그것은 나의 상태였고, 미래에 대한 불안이었으며, 멈추면 뒤처질 것 같다는 강박의 형상이었다. 그래서 내 그림 속 자동차는 늘 불안정하다. 왜곡되고, 해체되고, 속도만 남은 채 방향을 잃는다. 나는 물감을 긁고, 밀고, 흐르게 한다. 스퀴지로 표면을 밀어낼 때 화면은 잠시 통제를 벗어나고, 직선을 긋고 자수실로 화면을 가로지르며 나는 기술을 과시하기보다 기술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반복한다. 그 모든 행위는 속도를 멈추기 위한 제동이 아니라, 지금 내가 어떤 불안한 속도로 살아가고 있는지를 드러내는 기록에 가깝다.


나는 여전히 미래가 불안하다. 그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이제는 그 불안을 외면하지 않는다. 자동차를 그린다는 것은 달림을 찬양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질주 속에서 길을 잃은 나 자신을 바라보는 일이다. 우리는 모두 신호 앞에 서 있다가 다시 출발한다. 그 방향이 명확하든 그렇지 않든. 그렇다면 정말 중요한 것은 속도가 아니라, 우리가 왜 이렇게까지 멈추지 못하는지 스스로에게 묻는 일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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