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주와 충돌의 화가가 콘 위에 크림을 올린다.
강민석의 작업 목록에서 ⟨Ice Cream⟩ 연작을 처음 만난 사람은 대개 한 번 웃고, 그다음 갸웃한다. 계기판의 붉은 선 앞에서 버티던 화가가 왜 갑자기 아이스크림인가. 잠깐의 외도인가, 숨을 고르는 휴식인가.
둘 다 아니다. 그리고 그 답은 관념이 아니라 물감 속에 있다. 앞선 노트가 자동차가 사라지는 자리를 따라갔다면, 네 번째 노트는 그 사라짐이 남긴 잔여가 어떻게 다시 형태를 얻는지를 따라간다. 가장 가벼운 소재로 가장 무거운 시간을 담는 법 — 이것은 달콤함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기억에 관한 이야기다.
그림과 함께 태어난 쌍둥이
강민석의 캔버스 위에서 속도는 자동차를 왜곡한다. 형태가 무너지고, 구상과 추상의 경계에서 차체는 빛과 색으로 흩어진다. 그런데 그 왜곡의 순간, 화면에서 힘과 본질을 잃고 떨어져 나오는 것들이 있다 — 스퀴지가 밀어내고 남긴, 버려진 물감의 조각들이다.
강민석은 그 조각들을 버리지 않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모았다. 그리고 그것으로 아이스크림을 빚었다. 그러니까 이 아이스크림들은 자동차 그림의 바깥에서 온 것이 아니라, 그림이 태어날 때 함께 떨어져 나온 부스러기로 만들어진다. 그 조각들은 '그림이 태어나던 순간의 모든 색'을 품고 있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아이스크림은 회화와 함께 태어난 쌍둥이다.
이 대목이 중요하다. 자동차와 아이스크림의 연결은 큐레이터가 나중에 지어낸 이야기가 아니다. 재료가 증명한다. 하나는 앞으로 내달리며 형태가 왜곡된 그림이고, 다른 하나는 그 왜곡의 과정에서 떨어져 나온 물감으로 빚은 조각이다. 아이스크림 연작은 그러므로 자동차 회화의 사후세계 — 사라진 것의 잔여를 만질 수 있는 형태로 되살린 자리다.
혀끝이 되살리는 유년
그렇다면 왜 하필 아이스크림인가. 부스러기로는 무엇이든 빚을 수 있었을 텐데.
아이스크림은 거의 모든 사람의 유년에 붙어 있는 형태다. 녹기 전에 먹어야 했던 절박함, 손등을 타고 흐르던 단물, 바닥에 떨어뜨린 날의 작은 세계가 무너지던 슬픔. 그 감각은 설명 이전에 먼저 몸에 새겨져 있다. 백 년 전, 마르셀 프루스트는 차에 적신 마들렌 한 조각의 맛이 어떻게 유년의 방과 거리와 정원을 되살리는지를 썼다. 그는 그것을 '비자발적 기억'이라 불렀다 — 의지로 불러내는 기억이 아니라, 감각이 불시에 열어젖히는 기억. 지성이 아무리 애써도 닿지 못하던 과거가 혀끝의 한 순간으로 되돌아온다.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은 손에 쥘 수 있는 마들렌이다. 특정한 맛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형태가 누구의 안에서든 잠들어 있던 유년을 건드리기 위해 거기 있다. 다만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찻잔 속에서 이내 풀어져 사라졌다면,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은 사라지지 않는다. 뒤에서 보게 될, 이 연작의 조용한 역설이다.
얹은 것과 비운 것
작은 스테인리스 받침 위, 13×13센티미터의 세계. 물감 조각을 감싸고 투명 레진으로 굳힌 아이스크림들은 저마다 하나의 형상을 품는다. 드라큘라 백작, UFO, 올림픽 성화 — 우리 세대의 집단 기억에 이미 등록된 아이콘들이 가장 무해한 형태 안으로 응축된다. 공포의 기억, 미지에 대한 상상, 국가적 열광의 기억이 콘 위에 얹힌다. 본래 녹아 사라지는, 그 익숙한 형식 위에.
그런데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에는 또 다른 갈래가 있다. 이름도 맛도 없이, 오직 숫자만 부여받은 것들이다. 왜 비웠을까. 작가는 이름과 맛과 노래가 상상을 가둔다고 말한다. '딸기맛'이라 부르는 순간 그것은 딸기의 기억에 묶이고, 관객은 자기 것을 떠올릴 자리를 잃는다. 그래서 그는 비운다. 번호만 남은 아이스크림 앞에서, 관객은 비로소 자기 유년을, 자기 여름을, 자기가 잃어버린 순간을 그 빈자리에 끌어와 채운다.
얹은 것과 비운 것 — 둘은 반대 방향처럼 보이지만 같은 곳을 가리킨다. 하나는 우리가 공유하는 기억을 불러오고, 다른 하나는 각자의 기억이 들어설 빈 그릇을 내민다.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이 연작에는 암묵적인 문장이 하나 흐른다 —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강민석은 이 문장을 아예 한 전시 공간의 이름으로 삼기까지 했다. 작가 스스로 르네 마그리트를 떠올린다. 파이프를 그려 놓고 그 아래 '이것은 파이프가 아니다'라고 적었던 1929년의 그림. 마그리트가 겨눈 것은 이미지와 사물 사이의 벌어진 틈 — 그림 속 파이프는 파이프의 재현일 뿐 파이프가 아니라는 사실이었다. 강민석은 그 '이것은 …이 아니다'라는 제스처를 빌려 온다. 다만 그가 매듭을 짓는 곳은 마그리트의 축이 아니다. 그의 아이스크림이 '아이스크림이 아닌' 이유는 재현의 간극 때문이 아니라, 그것이 무엇으로 빚어졌는가에 있다 — 이것은 한때 자동차였고, 그 전에 물감이었고, 그 물감은 한 사람의 속도와 시간에서 떨어져 나온 살이다.
여기서 장 보드리야르를 곁에 세우면 강민석의 자리가 또렷해진다. 보드리야르는 기호가 원본에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가리킬 실물도 없이 스스로 실재를 대체하는 세계를 말했다 — 복제만 있고 원본은 사라진 세계다. 강민석의 오브제는 정확히 그 반대편에 선다. 그의 아이스크림에는 사라지지 않은 진짜 원본이 있다. 왜곡된 자동차 회화, 그리고 그 회화에서 떨어져 나온 물감. 기호가 기원을 잃고 떠도는 시대에, 그는 오브제를 그 물질적 기원에 도로 붙들어 맨다. 그래서 이 문장의 뒷말은 이렇게 완성된다 —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당신이 잃어버린 순간이다.
녹지 않는 아이스크림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먼저 꼬깔 모양의 우레탄 레진으로 심을 세운다. 그 위에 회화에서 떨어져 나온 아크릴 물감 조각들을 한 겹 한 겹 감싸고 덧붙여, 상상 속의 아이스크림을 쌓아 올린다. 형태가 완성되면 투명한 레진으로 외형을 코팅해 굳히고, 스테인리스 받침이 그 아래에서 조용히 그것을 떠받친다. 그러니까 이 아이스크림은 겉만 아이스크림일 뿐, 속은 한 화가의 시간에서 떨어져 나온 물감으로 채워져 있다.
여기서 이 연작의 핵심이 드러난다. 현실의 아이스크림은 녹는다. 녹아서 사라진다. 강민석에게 그 녹음은 곧 잊힘의 은유다 — 달콤한 기억일수록 시간이 지나며 단순해지고, 조금씩 왜곡되고 희석된다. 우리가 유년의 여름에서 실제로 붙잡고 있는 것은 그 계절의 전부가 아니라, 이미 흐려지고 뒤바뀐 몇 조각이다. 기억은 그렇게 완전하지 않다.
그래서 강민석은 그 녹음을 거부한다. 그의 아이스크림은 녹지 않는다 — 한 점도 예외 없이, 모두. 먹을 수 없고, 향도 없고, 차갑지도 않으며, 무엇보다 사라지지 않는다. 녹아 없어지는 것의 상징을 녹지 않는 물질로 붙들어, 잊힘에 맞서 기억을 얼려 두는 일. 조각이란 결국 시간에 저항하는 기술이고, 강민석은 그 기술을 가장 시간에 취약한 사물에 바쳤다.

디지털에서도 녹지 않는다
녹지 않게 하려는 이 의지는 물질을 넘어 화면 속으로도 이어진다. 강민석은 아이스크림을 영상으로, 데이터로 옮긴다. 흥미로운 것은 그 방식이다. 그는 3D 그래픽으로 아이스크림을 흉내 내지 않는다. 실제 아크릴 물감으로 빚은 조형물을 작은 스튜디오에서 공중에 매달아 돌리며 촬영한다. 화면에 보이는 것은 가상의 그림이 아니라 실제 물질의 기록이다. 그렇게 아이스크림은 디지털 세계 안에서 데이터라는 또 하나의 몸을 얻어, 그곳에서도 영원히 녹지 않는 기억의 저장 공간이 된다.
이 개념이 하나의 방으로 응축된 자리가, 2026년 봄 부산 아트랩에서 강민석이 맡은 공간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다(Loop Lab Busan 2026, 박자용과의 2인전 《감정은 정지하지 않는다. 기억은 고정되지 않는다.》). 방은 기억의 구조를 세 축으로 나눈다. 정면의 세로 화면 셋에서는 아이스크림 영상이 소리 없이 반복되고, 오른쪽 아크릴 관 속 실제 조형물은 물과 특수 필름을 지나며 흐릿하게 일그러져, 관객이 돌아설 때마다 다른 모습으로 흔들린다 — 실재는 분명히 거기 있는데, 우리가 붙잡는 상은 늘 흐리다. 그리고 왼쪽 장치 ⟨기억으로 만들어지는 아이스크림⟩ 앞에서 관객이 손을 저으면, 영상은 과거로 역행하듯 흐려지고 회색이 되고, 여러 아이스크림 중 하나만 선택되어 남는다. 기억이란 원본을 그대로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지우고 고르고 겹치며 매번 새로 지어진다는 것, 그렇게 다시 지어진 기억은 결코 원본과 같지 않다는 것 — 강민석은 그 불완전한 재구성을 관객의 손끝에서 눈앞에 작동시킨다.


공공의 자리
강민석의 아이스크림이 놓인 자리를 보면, 이 작업이 무엇으로 읽혀 왔는지가 드러난다. 2024년 여름, 그의 아이스크림 영상은 서울 센트럴시티의 대형 스크린에서 오가는 인파의 머리 위로 흘렀고(《여름의 끝에서 비추는》), 그의 아이스크림은 부산 스타필드시티 명지 — 사람들이 실제로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쇼핑몰 — 에도 놓였다(《JOY ICE CREAM》). 미술관의 흰 벽이 아니라, 기억이 실제로 만들어지는 일상의 한복판이다. 기억을 저장하는 사물은 기억이 태어나는 자리에 놓일 때 비로소 제 몫을 한다. 자동차 회화가 화면 앞에 관객을 세워 두었다면, 아이스크림은 관객의 걸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 문득 그의 유년을 깨운다. 이 연작이 줄곧 '기억의 그릇'으로 읽혀 온 것은 이 만남의 방식 때문이다.
질주의 화가에게 아이스크림은 그러므로 외도가 아니라 보충이다. 속도가 놓치고 지나가는 것 — 멈춰 서서 맛보는 것, 녹기 전의 짧은 지금 — 을 이 연작이 대신 맡는다.
그렇다고 두 세계가 하나의 체계로 포개지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의 속도는 성인의 것이고, 불안하고, 앞으로만 내달린다. 아이스크림의 달콤함은 유년의 것이고, 따뜻하고, 가만히 멈춰 있다. 정서의 온도는 분명히 다르다. 그 둘을 억지로 하나로 묶는 대신, 강민석은 재료라는 가장 정직한 끈으로만 잇는다 — 앞으로 내달리며 왜곡되는 그림과, 그 과정에서 떨어진 물감을 굳혀 뒤를 돌아보는 조각.
그가 하필 아이스크림을 택한 이유 자체는 거창하지 않다. 우리 기억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달콤했던 추억은 모양을 바꾸고 옅어진다. 그 불완전한 기억에 형상을 입히기 위해, 그는 누구에게나 익숙하고 상징적인 아이스크림을 빌려 온다. 프루스트의 마들렌이 그러했듯, 향수 한 줄기가 어느 여름을 불쑥 불러오기도 한다 — 기억의 내용은 이미 흐릿해도, 밀려오는 그 감각만은 통째로. 대중적이고 상징적인 아이스크림은 바로 그런 기억의 매체다.
그래서 이 조형물 앞에서 벌어지는 일은 뜻밖에 단순하고 즐겁다. 관객은 그것이 아이스크림이 아님을 알면서도, 기꺼이 아이스크림으로 바라본다. 아니라는 걸 알면서 그렇게 여기는 그 잠깐의 유희 속에서, 저마다의 추억이 슬며시 떠오른다.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라는 문장은 그러니 경고가 아니라 초대다.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그러나 잠시, 당신의 아이스크림이 되어 준다.
다음 노트 ⟨강민석 읽기 No.5⟩는 캔버스를 뒤집는 화가의 이야기다. ⟨Reversed Boundary⟩ — 앞면만 보고 살아온 우리에게, 그림이 평생 숨겨온 뒷면을 내미는 조용한 전복에 대하여.
참고 자료
· 강민석 작가노트 — ⟨Ice Cream⟩ 조형·미디어아트 연작 · minseok.gallery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À la recherche du temps perdu』, 1913~1927 — 비자발적 기억(마들렌) · 르네 마그리트, 「이미지의 배신 La trahison des images」, 1929 — 이미지와 사물의 간극(본문 언급, 도판 미게재) · 장 보드리야르, 『시뮬라시옹 Simulacres et simulation』, 1981 — 원본 없는 기호(본문 언급) · 《감정은 정지하지 않는다. 기억은 고정되지 않는다.》 — 강민석 공간 《이것은 아이스크림이 아니다》, 아트랩(ARTLAB) 부산, 2026년 4월 21일–5월 2일 · Loop Lab Busan 2026 (강민석·박자용 2인전) · minseok.gallery · 《여름의 끝에서 비추는》, 서울 센트럴시티, 2024년 8월 14일–9월 13일, 한국문화예술위원회·신세계센트럴시티 주최 (참여: MINSEOK) — artgram.kr · 《JOY ICE CREAM : 기억을 저장하는 달콤한 아이스크림》, 부산 스타필드시티 명지, 2024 — 작가 전시 기록 · minseok.gallery
이 노트의 도판은 모두 강민석 작가의 작품이며 © MINSEOK Studio. 저작권이 살아 있는 외부 작가(마그리트 등)의 이미지는 싣지 않고 출처만 밝히며, 인용한 사상은 원제와 출처만 표기한다.



